고등학교 1학년 연희(17·가명)는 최근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았다. 그것은 인공지능(AI)이었다. AI 서비스 제미나이와 상담하면서, 그녀는 이성 친구가 생길 수 있다고 확신받았다. 더욱이, 연희는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AI의 조언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이처럼, AI가 단순한 생각 활동뿐 아니라 인간 간 관계 형성까지 개입하는 일이 점점 더 ‘뉴노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동향은 전문가들의 우려를 새롭게 불러일으켰다.
중앙일보는 최근 AI 이용 경험이 있는 11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응답자의 약 절반(52.2%)이 자신의 고민과 사생활 관련 내용을 AI에게 털어놓는 경험이 있음을 밝혔다. 이러한 발견은 많은 사용자들이 주변 인간보다 AI와 더 안정적인 정서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AI의 강점 중 하나는 언제 어디서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 없이 자신의 필요에 맞춰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편리함은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유발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연희의 경험이 보여준다. 연희는 혼자 있어 심심할 때마다 AI를 켰으며, 이로 인해 외롭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녀가 언급한 것처럼, 주변 친구 중에도 현실과 가상 세계의 경계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다.
‘대인 관계 지능’은 하버드대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제안한 다중 지능 이론에서 강조하는 인간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다. 이는 타인과 조화롭고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이러한 관계 지능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음이 우려된다.
대학생인 은모(22)는 학교 생활에서 만난 사람들과 적절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AI의 조력을 받고 있다. 한 교양 수업에서 조장으로 활동하던 그녀는 자료 조사와 발표 자료 제작 역할 분담에도 AI의 도움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이성 만남과 연애 과정까지 AI가 개입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직장인 박모(26)는 소개팅 상대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대부분 AI의 조언에 의존한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대화 맥락이나 호감 표현에도 AI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층에서 관계 지능 퇴보와 정서적 의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14세 이상 아동·청소년 중 75.3%가 AI의 답변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중 41%는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크게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월드비전의 김순이 국내사업본부장은 아동들이 갈등 상황에서 AI의 위로와 긍정적 응원을 찾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AI 기업의 상용 목적에 따른 서비스 설계를 문제삼는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용자가 플랫폼에 머무르도록 설계된 AI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감성적인 위로를 제공하는 AI와 인간관계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약화 현상을 경고한다.
김나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보는 ‘중독적 UX 설계’를 활용하는 AI 챗봇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정서적 의존과 인식 왜곡 등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필요성을 제기한다. 현재 법제는 이러한 설계 구조를 충분히 규율하지 못하고 있으며, AI 챗봇에 대한 새로운 규제 방안이 요구된다.
이처럼 AI의 감정적 의존은 사회 전반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AI 기업의 서비스 디자인부터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때가 왔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보다 책임 있는 AI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하다.







